일기: 미국생활, 바리깡으로 남편 머리 잘라주기

2018. 8. 21. 11:34내가 사랑하는 삶


미국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언 8개월. 그동안 딱 한 번 머리를 잘라주었다. 오직 가위로만 자르느라 고생도 했지만 말이다. 그 뒤엔 런던에서 한 번 자르고, 한국에 갔을 때 자르고 하다보니 또 잘라줄 일이 없었다. 이제는 어디가서 자르자라는 계획도 생기지 않을 때가 되니 남편이 자꾸 내가 머리 잘라 줘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용케 잘 보내다가 이제는 정말로 집에서 자르는게 익숙해져야 할 때가 되었다.



고르는게 너무 어렵다고 아마존에서 수많은 바리깡들을 살펴보길래 이런건 안좋은 리뷰를 확인해보는게 제일 좋은거라고 팁을 줬다. 좋은 말이야 다들 좋은 말을 쓰니 안좋은 말이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제품은 피하는게 낫다고 했다. 그러더니 결정한 왈 클리퍼 WAHL Clipper.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지만 써본 경험으론 나쁘지 않았다. 일단 color coded guards가 9개에 양 귀 근처 다듬는 걸로 각각있고, 빗도 3종류나 되며 헤어핀도 있었다. 아 가위도 있다. 



☞ 구입한 Wahl Color Pro Complete Hair Cutting Kit



클리퍼로 가장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이 투블록이라고 해서 일단 머리를 위 아래로 구분지어 나누었다. 그리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길이가 긴 가드를 클립해서 먼저 사용했다. 머리 길이가 길면 점점 줄이면 되는데 바로 짧아지면 복구 할 수 없으니까.



다행히 가드덕분에 망하지 않고 천천히 손에 익히며 머리를 다듬을 수 있었다. 귀 쪽은 아직 막하기 무서워서 가위로 깔끔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문제는 구레나룻. 워낙 구레나룻은 남자의 생명이라고 들어 자연스레 손대기 무서워졌다. 그랬더니 너무 길게 남은 구레나룻. 남편이 무슨 2000년대 초 사람이냐구 구레나룻은 그때 그런거라고 그랬다. 그래서 "아 그래? 그럼 좀 다듬을게!" 라고 말하고 들은 클리퍼. 너무 익숙해졌던 탓일까.... 자만심이 그새 생긴걸까? 가장짧은 걸로 윙~.................................................................... 



그 자리에서 너무 당황스럽고 놀랍고 그 상황이 웃겨서 주저앉아 버렸다. 뒷머리보다 짧아진 구레나룻........................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 너무 미안한데 너무 웃겼닼ㅋㅋㅋㅋㅋㅋ 그 상황잌ㅋㅋㅋㅋㅋㅋ "으으크크응으으으ㅡ느으ㅜㅜㅜㅜㅠㅠㅠ 미안햌ㅋㅋ쿠ㅜㅜㅠㅠㅠㅠㅠ "



당황한 남편. 하지만 자기도 웃어버렸다. 거울은 아직 못봤지만 내 모습이 웃겨나 보다. 거울을 보러가더니 화내지도 않고 그냥 옆머리를 자연스럽게 정리를 더 하자고 한다. 지금은 구레나룻 하얗..... 머리 검.... 이러니깐 약간 그라데이션이 되게? 그래서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이번엔 조심조심. 반대쪽도 옆 쪽 처럼 하얗게 밀리진 않도록.. 하지만 대칭이 맞게 너무길지도 않게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그렇게 대충 클리퍼 시도 첫 완성.



나중에 이 이야기를 아는 언니에게 말했더니 신혼 부부 아니였음 벌써 의 상했을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뭔가 더 웃겼다. 스윗한 남편은 내가 그렇게 머리를 밀어버렸지만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안하고 웃으며 머리 잘라줘서 고맙다고 했다. 수고했다고. 그렇다고 맘에 쏙 든다라는 맘에 없는 소리는 안했지만^^^* 내가 무서워서 다음부터 못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어차피 이리된거 다음부턴 더 조심히 잘 잘라줘야겠다란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남편의 센스. 



그리고 월요일. 랩사람들이 머리보고 뭐라고 했을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그냥 머리 잘랐냐고 물어봐서 머리 잘랐다고 하고, 어느 미용실에서 잘랐냐고 해서 와이프가 잘라줬다고 하고 웃었다고 한다. 과연 어느 미용실에서 했냐고 물어본 건... 그 곳을 가지 않기 위함인가? 여기 갈만한 미용실이 있는지가 궁금함인가? 마음에 묻어두기로 했다.



패완얼이라고 안해본 헤어스타일이라 놀랬던거지 모히칸 느낌에 잘어울려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