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0. 05:26ㆍ내가 사랑하는 삶
실제 바이오리듬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어느 주기에 한 번씩 울적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든다. 맑은 하늘만으로도 감사한 미국생활이 이런 주기와 맞물리면 정착하지 못한 삶과 내 커리어에 대한 불투명함, 그리고 나의 게으름을 한탄하며 밑도 끝도 없이 우울감만 나를 감싼다. 나도 돈 벌고 싶은데, 나도 이거 하고 싶은데, 그럴려면 내가 이거 이거를 해야지만 가능하는데 등 고민과 걱정의 범위는 한계를 모르고 무작정 뻗쳐만 간다. 평상시에 고민이 생기면 걱정하면 뭐하나! 행동으로 옮겨야지 으쌰으쌰 한다면, 이런 날엔 끝내 아무생각도 하기 싫어지는 지경에 이른다.
며칠 전 바로 그 날이 왔다. 이유도 명분도 없이 찾아온 무기력함. 남편 품에 안겨 횡설수설 나의 우울함과 걱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묵묵히 들어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꼭 끌어안아 주기도 했다. 끝내 나는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고, 남편은 나를 위로해주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이 한 말....."내가 너의 '비닐하우스'가 되어주고 싶은데...."....................................응? 여보? 뭐라고?
그 순간 3초 간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우울감을 모두 태워버릴 정도로 빵 터지고 말았다. "여봌ㅋㅋㅋ 비닐하우스라니??? 온실 말하고 싶었던거야????" 비닐하우스라니. 너무 구수한 것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너무 웃겨서 배가 찢어질 듯 아팠고, 평소처럼 남편을 놀리는 재미에 몰입했다. 시골에서 오셨냐고, 왠 비닐하우스냐고, 놀리다보니 언제 눈물 또르르를 했는지 잊을 지경이었다. 본인도 당황하여 뾰루퉁해진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 이 남자가 내가 결혼한 남자구나.
남편은 내가 누군가에게 화가나면, 나보다 열배는 화를 대신 내준다. 그 모습이 웃겨 난 결국 화가 풀린다. 남편은 내가 우울해 하면, 귀담아 들어주고 날 쉬게 해주며 가끔 이렇게 웃겨준다. 나 스스로 하나의 감정에 몰입했을 때, 그 외에 감정을 느끼게 해주며 나를 풀어주고 위로해준다. 물론, 서로에게 기분이 상했을 땐 조금 달라지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싸울 일이 거의 없으니 나의 결혼 생활은 만족스럽다.
이번에 찾아온 무기력함은 남편의 어록으로 무사히 넘어갔다. 나도 남편이 힘들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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