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멍청해지는 기분

2018. 4. 26. 08:54내가 사랑하는 삶



이상하게 유독 멍청한 행동을 많이 하는 날이었다.





아마존 프레쉬가 tote 가방을 수거하는 게 귀찮은지 요즘은 튼튼한 종이 가방 속에 비닐봉지와 일회용 얼음팩을 넣어서 배달해준다. 그 날도 그렇게 배달이 왔고, 나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 정리를 했다. 다 정리한 비닐봉지와 일회용 얼음팩은 남편에게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온 문자. "무슨 고기를 이렇게 통째로 버려?" 그 문자를 받은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보통 배달이 오면 내가 주문한 게 다 제대로 왔는지 주문내역을 보며 확인한다. 분명 확인해야지라고 생각 해놓곤 어쩐지 잊어버렸다. 얼음팩에 가려져 있던 고기를 보지 못하고 버려달라고 한거다. 남편은 평소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내가 버려달라고 했기에 나만 철썩같이 믿고 그냥 버린거다. 순간 그런 실수를 한 나도, 보고도 버린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게 아니라 trashute에 버린거라 이미 되돌릴 수 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 또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안동찜닭을 해먹으려고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나는 감자보다 고구마를 훨씬 좋아하는데 며칠 전에 다듬어 두었던 고구마가 있었다. 그 고구마를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해놓고는 잠시 다른 재료를 살펴보는 동안 고구마가 있단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새로운 고구마를 다듬었다. 다듬고 나서 기존에 다듬어져 있던 고구마를 보고 진심 핵멍청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슬펐다. 왜? 어째서? 분명 생각했는데 아예 기억을 잃은 것 마냥 잊을 수가 있지? 우울함이 밀려왔다.



다음 날, 머리가 지끈꺼려 아침에 일어났다. 머리도 너무 아프고, 자꾸 전 날 실수한 것들이 생각났다. 남편이랑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말도 어눌해 진 느낌이었다. 머리 속과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가 다른 느낌? 문득 며칠 전 머리를 세게 부딪혔던 게 생각났다. 



바로 구글에 '머리  세게 부딪힌 후 멍청해짐' 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 결과는 충격적. 꼭 의식을 잃지 않았었도, 혹은 혹이 나지 않았어도 머리는 예민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뇌진탕이 왔을 수도 있단 것이었다. 대부분의 뇌진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회복된다고 한다. 뇌진탕의 증세로는 뇌진탕 이후의 기억 손실도 있었다. 어눌해진 것도 포함. 갑자기 나의 멍청해짐에 이유가 생긴 것 같아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 내가 한심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내가 하는 말이 정상스러운지 의심이 되어 보고 또 보게 된다. 1년 동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뇌진탕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나의 두통도, 나의 멍청함도 함께 사라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