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아름다운 동행편>

2018. 9. 3. 04:23문화생활 기록




아직 결혼 전, 우연히 마주친 옆집 교수님께 곧 결혼한다고 말씀드렸었다. 평소에 왕래가 잦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 한 마디라도 나누는게 좋겠단 생각에 나온 말이었다. 그리곤 그런 일이 있었단 걸 잊었었다.


며칠 뒤, 내가 집에 없을 때 우리집에 결혼 축하한다며 책을 두고 가셨다. 그때 그 책이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었다. 괜히 말씀드려 신경쓰이게 한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독서모임을 열심히 하던 나에게 책을 선물해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그 때 말 한마디라도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교수님댁과 왕래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교수님 학회 방문차 보스턴에 오게 되어 뵙기도 했다.


선물받고 바로 읽지 못했던 이 책을 결혼한 뒤 꽤 시간이 흐른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진작 보면 훨씬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디만 지금도 늦지 않았고, 이걸로 내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


오늘 기록하고 싶은 부분은 “아름다운 동행”편이다. 아름다운 동행은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여기선 부부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부부관계에 대해 현자(본 책에서 노인들을 수많은 경험을 가진 현자라고 지칭하고 있다)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을 알려준다.


현자들은 첫 째로, 닮은 사람을 만났을 때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닮았다 함은 외적인 것이 아닌 인생의 가치관을 말한다. 둘의 가치관이 닮으면 닮을수록 의견차이로 싸울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우리 부부는 큰 틀에서는 성향이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지금까지 가치관에 대해 다툰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 전 충분히 많은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 못해 조금은 불안해졌다.


둘 째, 친구같은 사람과 결혼하라고 한다. 설렘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뜻이 아니라 설렘은 언제든 사그라들 수 있기에 친구처럼 우정을 쌓는 것이 결혼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둘이 있으면 뭘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보다 서로가 편안하고 의지가 되는 사이가 훨씬 이상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가장 마음에 콕 들어온 문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가슴떨리는 기분이 사라졌을때 우리를 함께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할 때, 아이들이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바로 부부의 우정이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때문에 같이 사는거지.’란 말이 나오기 싫었다. 또, 아이로 인해 부부관계가 모두 그쪽으로 편향되는 것도 싫었다. 내가 원했던 것을 다시 다짐해보게 되었다.


셋 째, 주는 것에 대해 아끼지 말 것. 상대의 신발을 신어봐라가 세 번째 타이틀이었지만 내가 글을 읽고 느낀 점은 베푸는 것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게 실망은 기대를 통해서 온다. 비단 남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 것 같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왜 그 사람은 그렇게 해주지 않는가라는 흐름 속에 기분이 상하게 된다. 기대를 할 거라면 처음부터 베품을 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부부관계는 내가 이만큼 줬으니 이만큼 받아야겠다가 아니라 전적으로 주는 관계라고 한다. 당장은 알 수 없지만, 후에 나의 베품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고 말한다. 나도 몇 개월의 결혼 생활동안 기대를 하게 되면 섭섭하고 다투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기대를 버리는 연습을 해왔다. 기대를 버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도 하지 못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기대를 버리는 연습은 해왔지만, 온전히 주는 연습은 하지 못했다. 이제는 온전히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넷 째, 싸움을 크게 받아들이지 말 것. 싸운 것은 싸운 것일 뿐 확대해석 하는 건 안된다고 말한다. 결혼 전 아직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다투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극단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왜 가족들은 싸워도 잘 지낼 수 있는데, 다른 사람과는 그렇지 못할까?란 생각을 했다. 가족과는 다퉈도 끝까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근데 왜 남자친구와는 누가 더 잘못했고, 상대가 사과를 하지 않으면 기분이 계속 나쁨이 지속되는지... 그건 결국 그를 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헤어지면 보지 않을 남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거였다. 가족은 싸웠다고 남이 되지 않는다. 물론 함께해온 세월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추억이 쌓여있는걸 빼놓을 순 없지만, 그래도 싸우는 순간도 서로를 사랑한다.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는 것은 내가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이 싸움은 함께 살아감에 있어 그저 지나가는 찰나라고 마음 먹는 것이었다. 생각은 이러하고, 알고는 있어도 막상 감정이라는게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단게 우스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현명하게 싸우는 법에 대해서 조언해준다. 논쟁을 하게 되면 함께 집 밖으로 나갈 것, 먼저 화를 푼 다음 이야기할 것, 서로 좋아하지 않을 위험요소는 없앨 것,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일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참 적용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 조언을 듣고 나도 즉시 우리에게 적용 할 것들이 없는지 생각해봤다. 상대가 내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할 시 즉시 사과부터 할 것과 한 달에 한 번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상대방이 따라줄 것같은 게 떠올랐다. 어렵지 않은 것들이지만 이런 나름의 룰이 있다면 사소한 다툼조차 사라질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말을 책은 남겼다. 절대 화난 채 잠자리에 들지 말 것. 부부가 가장 친밀한 공간이어야 할 침실에서조차 서로에 대한 불신과 악감정이 넘친다면 그 부부관계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혼 이후 큰 싸움없이 잘 지내던 우리였지만, 책을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결혼이란 건 서로 달리 살아온 남녀가 함께 미래를 약속하는 일이다. 다툼이 없을 수 없지만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면 독이 아닌 약일 것이다.


문득 자기계발서라면 일단 기피했던 나에게 책을 선물해주신 교수님께 더욱 감사했다. 책선물이란 그런 것 같다. 하는 사람도 자신에게 좋았던 것을 받는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받고 읽는 것.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