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기록: 내가 읽은 '블랙 미러 Black Mirror' 시즌 1-1

2018. 1. 27. 07:27문화생활 기록


새로 산 TV가 콘솔 게임용으로만 이용되고 있을 즈음 우리는 넷플릭스 시청을 시작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셋톱박스가 유행하고 있다면, 미국은 단연 OTT서비스다. OTT서비스는 Over The Top의 약자로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을 통해서 각종 영상을 구독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TV를 구매할 때 스마트TV인지가 중요하다. OTT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아마존TV, 유투브TV 등 다양하게 있지만 넷플릭스를 구독하게 된 이유는 익숙함과 컨텐츠의 매력이랄까. 



남편이 남자친구일 적 넷플릭스 구독을 했는데, 정작 본인보다 내가 더 애청했다. 가격에 따라 동시에 구독할 수 있는 인원 수가 늘어나다보니 아이패드로도 보고 아이폰으로도 보고 한 시즌을 이어서 보기도 하고, 한 편을 끊어서 보기도 하고... 고정된 장소에서 봐야한다는 TV의 불편함을 뛰어넘으니 어느새 드라마 및 영상과 친하지 않던 나도 즐겨보기 시작했다. 다큐를 보면서 영상미에 빠져 들었고, Sense8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기도 했다. 그리고 놀라운 알고리즘으로인한 취향저격 추천. 그렇게 미국생활에서 넷플릭스가 다시 시작되었다.



블랙미러는 남편이 남자친구일 때 조금은 불편하지만 생각할 것이 많은 드라마라 내가 한 번쯤 보았으면 좋겠다면서 스포를 하던 드라마였다. 재미를 나와 공유하고 싶은데 내가 아직 보지 않았으니 마구 스포하는데 보고싶은 맘이 들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재밌는 컨텐츠가 너무 많았다! 최근 블랙미러를 잊고 있다가 다른 친구도 추천하는 걸 보고 문득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미러 시즌 1. 1화 '국가 The National Anthem'



영어 제목을 보기 전까진 국가 Nation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국가가 아니었네. 그 알던 '국가'가 아님으로써 제목과 내용은 좀 더 복잡하게 연결된다. 


블랙미러 시즌 1은 미디어와 대중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미디어와 대중으로만 놓고 보기엔 뭔가 걸린다. 1화를 보면서 그것은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44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엄청나게 넓은 범주의 이야기들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1. 벌거벗은 여인 고디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고, 계속해서 떠오른건 벌거벗은 여인 고디바 이야기였다. 



Lady Godiva naked and on her horse. 

Lady Godiva by John Collier



국가에서 나오는 총리와 레이디 고디바의 이야기는 많이 다르지 않다.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점도 있다. 약 900년전 영국의 코벤트리에서 영주의 부인인 레이디 고디바가 세금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남편인 영주에게 세금을 감면해주길 요구한다. 하지만 영주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 싫었고, 레이디 고디바가 응하기 아주 어려운 조건을 내세운다. 바로 마켓데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코벤트리 시내에서 말을 타는 것이었다.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백성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위의 그림만큼 아름다운 결말로 끝이 난다. 레이디 고디바는 백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말을 탔고, 그것을 알았던 백성들은 자진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보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고결함을 지켜주었다. (17세기에 새로 나온 이야기에선 말을 타고 나서기 전에 레이디 고디바가 사람을 시켜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했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그 명령을 지켰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참고 Historic UK



이 커다란 맥락이 블랙미러 시즌1의 1화 '국가'와 닮아있다. 과도한 세금은 영국 국민들이 사랑하는 공주로 바뀌었고,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은 총리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은 요구에 응했고, 결과적으로 백성과 국민들은 행복해졌다라는 해피 엔딩. 바로 여기서 내가 그동안 놓쳤던 것들이 보여졌다. '벌거벗은 여인 고비다'를 보면서 나는 아름다운 여인과 아무도 오락이나 호기심으로 그녀를 보지 않았다는 믿을 수 없는 미담만을 기억했다. 눈이 시리게 아름답고 청초한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분노, 그녀의 망설임, 그녀의 가장 바닥까지 보여줘야 하는 절망감을 보지 못하도록 나의 눈을 가렸었다. 지금 나는 옷을 걸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엄청난 수치심이 몰려올 것이다. 하물며 900년 전이다. 그 시절 가장 높고 고결한 위치의 여성이 벌거벗고 모두에게 보여진다는 것은 총리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방송을 한 상태에서 돼지와 사랑을 나누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또 한 가지, 영국과 세계를 발칵 뒤집은 '국가'에서의 해프닝은 900년 전의 이야기가 백성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미담과 마찬가지로 총리가 공주를 구한 영웅적인 이야기로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극 중에서 1년 뒤 총리는 떨어지고 있던 지지율을 상승세로 회복했고, 대외적으로는 정치행보를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었다. 벌거벗은 여인 고디바에서 우리가 미담만 기억하듯이, 그와 그의 주변이 겪은 고통은 이해하지도 못한채로 그렇게 계속 기억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유사점에서 찾은 새로운 발견 외에도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든 점이 있었다. 바로 이 오래된 이야기와 가장 다른 점. 900년 전엔 보지 않았고, 지금은 보았다 라는 점이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순진하게도 총리를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도 동일하게 공주를 구하는데 책임감을 가진 사람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총리와 동일하게 행동할 수 있거나 적어도 그 장면을 스스로 보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만이 총리를 비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총리가 여기서 가장 괴로워하는 점은 그런 수치스러운 행동을 함 자체에도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기억할 것이라는 것에 있었다. 또, 극 중에서 실제로 대화로 표현되는데 총리는 공주 개인의 안위보다는 돌아선 국민들로 인하여 자신의 정치인생이 끝날 것을 두려워 하며 납치범의 요구에 응한다. 총리가 행동하게 만든 것은 결국 국민들이기에 국민들도 함께 책임감을 가져야했다. 드라마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이 나왔다. 안타까워하는 사람, 당연히 해야한다는 사람,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거라는 사람, 역겨워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든 본인의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 것을 본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 되었다. 공주를 구해야하는 것에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이 날 불편하게 했다. 계속해서 나라면?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는 단순히 이 하나의 가상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지금 살고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어 더 불편하다.




2. 미디어와 대중




가장 흔하고 가장 스스럼 없이 다가오는 주제가 바로 미디어와 대중이 아닐까 한다. 미디어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력을 여실없이 보여줬으며, 그 미디어를 이용하는 대중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줬다. 납치범의 협박 영상은 유투브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여론은 트위터를 통해 대중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소통했다.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미디어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모두가 정보를 빠른 시간내에 공유할 수 있다는 놀라움과 한 개인을 파괴하는데 드는 짧은 시간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복잡한 드라마를 진부한 주제에만 넣어 해석하기에는 아쉽다. 그리고 재미가 없다. 진부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미디어의 장단점을 충분히 알고 있지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방면으로 해석하면 재밌을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정리해보는 것으로 미루고 넘어가려한다. 




3. 예술가에 대한 고찰




전공 상 그런 것인지 너무나도 짧게 나왔지만 강렬했던 납치범이자 예술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뉴스 중에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를 하던 작가가 논란이 있어 조기에 전시가 끝나게 되었단 이야기가 짤막하게 나온다. 다시 찾아 그 작가가 범인이었는지 확인하려 했는데 찾지 못했다.... 다시 처음부터 볼 자신은 없고... 해당 뉴스가 굳이 시간을 할애하면서 그냥 나왔을리 없으니 범인과 같은 작가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가장 많은 사람이 본 퍼포먼스. 그렇게 사람들은 말했고, 예술가라 칭했다. 하지만 그 퍼포먼스는 명백히 범죄였다. 한 사람을 납치했고, 협박했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이 것을 퍼포먼스라고 부르고, 그가 한 행위가 예술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라 할 수 도 있을테고, 범죄행위를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범죄도 예술인가? 란 질문이 던져졌고, 나는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칭하는 많은 위인들이 범죄자였단 것은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행한 악행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의 작품만 기억한다. 그렇기에 납치범은 위대한 예술가인가? 답할 수 없다. 언제나 예술에는 도덕성의 경계가 모호하니깐. 



예술은 늘 그렇듯 역사에 남을 논란거리가 시대의 작품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예술의 역사라고 부를 것이다.




포스팅 제목에서 말했듯이 이건 내가 '읽은'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드라마에 대한 해석이다. 한 편이 강렬했고, 많은 생각이 들게 했고, 난 그 생각들의 정리가 필요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생각들이 정리 되었을 때, 그것이 나의 주관이 되고 다른 의견을 수용할 준비를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내용들을 정리할 때 까지 다음 화를 볼 수 없었다. 개운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의 더 많은 의견이 궁금하지만 일단 이렇게라도 정리한 것에 만족하며 다음 화를 봐야겠다.